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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3한예종지정희곡임차인 남자예상독백 기사


    written by 김선국
    2012-07-20 15:41:38


    기사 : 한번은 새벽에 여자 손님을 태웠어요. 근데 이 여자가 행선지를 말하지 않는 거예요. 도대체 어딜 가시자는 겁니까 하고 다그치니까 그냥 몇 시간 드라이브를 하겠다는 겁니다. 이상하죠? 뭐 그래서 땡 잡았다 생각하고 한적한 교외로 빠졌죠. 근데 도중에 슬쩍슬쩍 백미러로 훔쳐보니까 말입니다. 아, 이년이 울고 있지 뭡니까. 거 기분 더럽대요. 나이는 잘 모르겠는데 하얀 얼굴에 생머릴 했고 입술은 빨갛게 칠했어요. 거 오동통통 해가지고 쬐끄만 그런 입술 있잖아요. 근데 이 여자가 입술을 꼭 다물고 눈만 깜박깜박하면서 우는 거예요. 그래서 슬슬 말을 붙여봤거든요. ‘손님, 무슨 슬픈 사연이 있으신 모양인데 속 시원히 털어놓으시죠. 그러다 보면 풀리지 않겠습니까.’ 이렇게 말입니다. 저로선 서비스하는 거였죠. 근데 고년이, 아이구 죄송합니다 선생님, 그 여자는 대꾸도 안 해요. 이상하잖아요. 혹시 벙어린가? 가만... 그런데 벙어리가 아깐 왜 말을 했죠? 하여튼 뭐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겁니다. 그래서 계속 그렇게 울면 차 세우고 내리라고 할겁니다 라고 했더니 갑자기 소리 내서 우는 겁니다. 요상하게 흐느끼는 그런 거 있죠. 에이 정말 재수 더럽더라구요. 그래서 울지 말라고 냅다 소릴 질렀어요. 그래도 막무가내로 울어요. 정말 못 참겠더라구요. 뭐 얼굴이 이뻐요? 다 필요 없더라구요. 그냥 그년만 차에서 빨리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. 어찌나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그냥 나도 모르게 급부레이크를 확 밟아버렸죠. 어이 잘못했으면 정말 골로 갈 뻔 했어요. 펑크 난 거 있죠. 앞바퀴가 확 내려 앉아버린 거예요. 재수 옴 붙었던 거죠. 그래 어떻게 합니까. 차를 갓길에 세우고 잭으로 차를 올리고 나서 타이어를 갈았지요. 새벽이었거든요. 그래서 그 손님한테 후라시를 주고 좀 비추라고 했죠. 근데 이 여자는 후라시를 비추면서도 계속 울어요. 선생님, 선생님이 만약에 그런 처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? 그죠? 곤란하겠죠? 제가 그랬다니까요. 그래서 타이어를 갈다가 그냥 따귀를 한 대 올려 붙여버렸거든요. 생각해보세요. 그런 이상한 시추에이션에서 일이 되겠습니까? 그랬더니 아 요게 더 크게 울면서 뭐라는 줄 아세요? 에이 참 더러워서 ‘선생님, 고마워요. 절 이렇게 때려주셔서. 더 때려주세요. 더 세게.’ 이러더라구요. 에이 씨 발 그래서 그래 너 혼자 실컷 울어라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밟아버렸지요. 어휴 정말 재수 꽝이더라구요. 어휴, 한참 전 일인데도 혼자서 밤에 운전하다보면 꼭 그년 생각이 난다 이겁니다. 내가 고맙다고? 그럼 전 뭡니까? 내가 왜 저 때문에 소름끼친 그날을 자꾸 떠올려야 하는 겁니까? 고맙긴 씨... 어이구 이거 제가 너무 지껄였군요. 죄송합니다. 그래도 얘기가 재미있잖아요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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